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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뉴우스/지역(地域)

밀양08-표충사

 


表忠寺654년(신라:태종무열왕)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敎區) 본사 통도사의 말사.[각주:1]
소재지: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31-2번지 Tel.(055)352-1150
좌표값 : 35 31'57.84"N 128 57'36.35"E (구글어스에서 붙여넣기하면 위치로 이동합니다)

찾아가기
승용차 이용시= 공통사항 어느 지방에서 오시던 '신대구고속도로-밀양IC' 밀양IC에서 표충사까지는 ~ 네비게이션 보고 가세요 ^^; 울산 언양 방향을 잡고 가시면 되는데 지방도(1077번)로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1077번 지방도 끝이 표충사입니다.근데 경북쪽이라면 언양에서 내려..지방도따라 오는것도 좋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시 = 기차를 이용하던 버스를 이용하던 무조건 밀양 시외버스터미널로!!! 고속버스타고 밀양으로 오셨다면 상관없지만 KTX 타고 밀양역에 내리실 경우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해야합니다. 택시로는 10분대 버스로는 20-30분대

버스로 밀양역에서 시외버스터미널 가기 => 밀양역에서 2, 4, 4-1, 6번 타시면 됩니다.
택시로 시외버스터미널 가기 => 10분대 가능한데 요금이 대충 4,000원 내외로 보시면 되겠습니다.기본요금 2km 2,200원 그담은 100원씩 쭉~쭉 ㅋ

밀양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충사가기
밀성여객 요금 2,800원 하루 12회 운행
버스시간표 07:35 08:45 10:10 11:20 12:40 14:20 15:00 16:40 17:30 18:20 19:20 20:20

여러 소리 그만하고 표충사로 고고싱!!!!

↑↑ 아불 삼거리..앞에 포스트'밀양07-산속의마을 감물리와 아리랑 밀양댐'편에서 밀양댐은 여기서 우회전..표충사 갈려면 직진이죠..여기서 부터 표충사 매표소까지 4km정도 됩니다.

↑↑ 일단 길따라 쭉 가면 됩니다..

↑↑ 삼거교에서 우회전임돠~표지판 보이시죠..

↑↑ 사진이 너무 구려서 그런데 이 길 참 이쁩니다..여름철에는 정말 좋더군요..(밑에 동영상 참조)

↑↑ 표충사 올라가기전 주차장임돠~~

↑↑ 공짜죠~휴가철에는 여기 꽈~왁 들어찹니다..끔찍했어요.ㅋ

↑↑ 여기에 주차하고 표충사 갈겁니다.물론 바로 표충사 일주문까지 차로 갈 수 있습니다..허나~요까지 왔어면 쪼메 걸어주는 센스!!! 여튼,,여기 토삼 차 어느걸까요? 퀴즈임돠..ㅋㅋ

↑↑ 이 주위로 식당,민박 같은게 있습니다.나름 좋습니다..놀기에~

↑↑ 서왕교,,,여길 건너 올라갑니다.

↑↑ 하천(남계천)이 한산하죠(?)ㅋ

↑↑ 우측편 나무있는..저기가 공영 야영장입니다.

↑↑ 표충사 올라가는길..좌측편이 공영야영장입니다.

↑↑ 우측에는 상인들이 여러가지 야채나 지역특산물을 판매합니다.

↑↑ 공영 야영장 참 한산합니다...허지만 피서철,,장난 아닙니다...↓↓ 아래 사진 보시죠

↑↑ 작년 휴가철임돠..차량으로 올라가면서 촬영..

↑↑ 곳곳에 텐트..흡사 피난민들.ㅋㅋ죄송--;;

↑↑ 텐트칠만한 곳은 구석구석 사람들입니다.여기뿐만 아니라 배내골 일대 골짜기 골짜기는 피서철 거의 몸살을 앓습니다.이 날 차로 표충사 갈때는 표충사 주차장까지 완전 길바닥이 주차장..-.,-

↑↑ 다시 돌아와서..공영 야영장 쪼메만 구경하고 올라갑시다...^^

↑↑ 애들 데리고 놀기는 좋겠군요.~

↑↑ 세면대,뭐 화장실도 있고요..있을건 다 있더군요..

↑↑ 휴가 지나고 초가을에 다시 갔었는데 참~~쓸슬하네요..ㅋ 토삼이랑 가을은 안어울려요..^^*

↑↑ 엥?? 모징?

↑↑ 딱 보는 순간 이게 개라고 생각못했습니다.

↑↑ 무슨 종인지 몰겠어요~~ 첨엔 늑대새끼인줄 알았는데.ㅋㅋ 아주 능글능글 맞더군요..혹,,떵개(?)

↑↑ 인자 표충사로 살랑~살랑 올라가봅시다..

↑↑ 솔숲입니다.~↓↓

↑↑ 무더운 여름지나고 낙엽이 쪼메 지기전 9월말..걷기는 딱이었습니다..

↑↑ 입산통제,,,래요 들어가지 마세요.ㅋ

↑↑ 한량맹코롬 걷다보니~

↑↑ 얘 무슨 꽃이죠??

↑↑ 우~후 매표소 입구입니다..전에 순천 송광사에 비하면 정말 후딱 걸어서 왔네요
표충사 입장 요금표
↑↑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오니 2,000원 아꼈네요..난 성인이니깐 3,000원

↑↑ ㅋㅋㅋ 멍청한놈 ^-^

↑↑ 넌 네가 안보이는줄 아냐????바부팅이 야옹이!!

↑↑ 지역 안내가 보이네요~내용은 표충사 내력과 지역 등산도 뭐~그런 내용입니다.세부사항 패스!!

↑↑ 화살표 우측으로 가면 '대원암'입니다.비구니스님들께서 계신곳이죠.잠시 외곽만 본다면~

↑↑·↓↓ 대원암입니다.

↑↑ 사명대사의 시호(諡號)[각주:2]에서 따온 홍제(弘濟)교입니다.멀리 일주문이 보이네요.

↑↑ 이 하천이 밑에 공영야영장 하천까지 연결되어 있겠죠~
↑↑·↓↓ 위 동영상은 일주문에서 수충루 앞까지 내용입니다.자세한 설명은 밑에 글 참조.

↑↑ 일주문을 중심으로 왼쪽 파란 화살표는 내원암 가는길이고요 우측 빨간화살표는 주차장으로 가는 길입니다.

↑↑ 일주문(一柱門)입니다.왜 이리 삐딱하게 찍었을꼬?? 맘이 삐뚤해서 그런가 봅니다.제 블로그 사찰관련 포스트에서도 일주문이 많이 나오는데 일주문이 뭔가?? 아는분들은 패스하고 조금 설명하자면
一柱門

=> 기둥 '주'자에 문 '문'자라~ '기둥이 하나이다' 라고 하면 스님 헤드락합니다.ㅋㅋ '기둥이 한 줄로 되어있다' 즉,'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었다' 보통 가옥은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게 기본이죠. 일주문의 원칙은 '일주삼칸' 즉,들어가는 입구가 3개입니다.글타면 세워야할 기둥은 몇개입니까?? 4개가 되겠죠.이 또한 일렬로 4개로 서있겠죠..일주삼칸이 뜻하는건 회삼귀일(會三歸一)[각주:3]사상입니다.위 사진을 보면 입구가 하나입니다.절마다 조금씩 다르죠.윗글에서 '기둥이 한줄로 되어있다'그말은 구조를 말한거고 일주문이 품고 있는 뜻이 뭔가??? 바로 '일심(一心)을 상징'합니다.

사전내용을 첨부하자면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보통'법당'이라고 하죠)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일주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세속의 모든 잡생각을 떨치고 오로지 부처님의 진리를 생각하라~~~(전에 스님한테 설명 들은건데 맞나요?? 아니면 정말 쪽팔리는데 --;;)


여기서 가람이란,인도어(산스크리트 어)의 sangarama(상가 아라마)를 한문으로 음역(音譯)[각주:4]하면 승가람마(僧伽藍摩)입니다.간단히 설명하자면 승가는 '무리( 무리 중)' 람마는 동산( 동산 원) 즉,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을 가르킨다....줄여서 '가람' 걍~절이라고 하시면 됩니다.절에서 스님들이 공부하시자나요..^^;;

약간 부연설명 겸 길게 가겠습니다..한번은 알고 가야자나요...

위에 승가람마 설명은 그야말로 의역입니다...지나치게 단어나 구절에 얽매이지 말고 전체 뜻을 살리는 번역이 의역이죠..불전도 어차피 인도에서 중국으로 거치다 보니 그렇게 됐는데 본시 '상가(sagha)는 일정한 목적을 위하여 사람들이 하나로 연합된 단체를 일컫는 말',,여기서 중요한게 단체입니다!!!!이 뜻이 불교에서는 출가수행자(出家修行者)의 교단(敎團)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교단의 구성에는 비구(比丘:남승) 비구니(比丘尼:여승) 우바새(優婆塞:남자 신도) 우바이(優婆夷:여자 신도)의 사중(四衆)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우리가 비구니는 많이 들어봤어도 비구는 첨 듣죠?? 와~좋은거 배웠어요.ㅋㅋ) 후에는 출가수행자의 단체만을 일컫는 말이 되었습니다. 즉 4인 이상의 수행자가 모일 때 승가가 되는데, 후에 중국 등지에서는 1인만으로도 승려로 불렸다고 합니다.승가를 설명할때 짧게 '승려'라고 했는데 승가의 뜻을 대충은 아시겠죠!!그렇다면 최초의 승가는??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鹿野苑)으로 가, 함께 수행한 적이 있는 5인의 수행자를 교화(敎化)하여 제자로 삼았는데, 그들이 최초의 승가입니다.(혹시나 해서^^; 최초의 승가가 석가모니가 아니고 석가모니 수행자 5인이 승가란말입니다.)비구는 인도에서 남성출가 수행자 그 단체가 비구승(比丘僧)이고 비구니의 단체가 당연히 비구니승입니다.

비구(比丘) = 팔리어() 비쿠(bhikkhu)의 음역.사전을 발췌하면

 그 뜻은 음식을 빌어먹는 걸사(乞士)이다. 출가한 남자가 사미(沙彌)를 거쳐 20세가 넘으면 250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를 구족계라고 하며,구족계를 받으면 비구가 된다. 비구에게는 지켜야 할 5가지 덕이 있다.
① 사유재산을 모으지 않고 걸식하며 살아간다. ② 번뇌 ·망상을 깨뜨려버린다. ③ 탐욕과 분노와 무지(無知)로 불타고 있는 집에서 뛰쳐나와 해탈(解脫)의 자리에 머무른다. ④ 계율을 청정(淸淨)하게 지킨다. ⑤ 외도(外道)와 악마를 두렵게 여긴다는 것이다. 비구는 4~5년간 강원(講院)에서 수학하여 교 ·학(敎學)을 익혀야만 한다. 지금 한국에서는 승가대학(僧迦大學)에서 공부하게 되어 있다. 비구는 경전을 듣고 배우기만 하고 수행이 따르지 않는 다문비구(多聞比丘)와 경전을 듣고 외우는 것은 많지 않으나 수행에 전력하는 과천비구(寡淺比丘)의 2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비구가 음식을 빌어먹는거라고 했는데 그게 탁발 (托鉢)이 되겠죠..탁발 아시죠?? 스님들이 목탁 두들기면 쌀이나 음식을 드리는거..뭐~요즘은 돈으로 받어시던데~여튼간에 BC 6세기 무렵 인도의 출가자들은 무소유(無所有)를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따로 주거지가 있는것도 아니고 독신으로 살면서 걸식을 통해 수도생활을 하셨습니다.이제 슬슬 절이 생긴 이유가 나올겁니다..지루해도 계속 읽어보세요.ㅋㅋ 인도의 우기가 되면 사실상 야외에서 생활이 어렵게되죠..또한 교단도 비대해지는데 따른 화합의 필요성....더 큰 이유는 장마로 인해 질퍽해진 땅 위에 나온 벌레를 밟아 죽이게 되는 경우!!!불교는 살생을 금하고 있죠...이런 이유로 석가모니께서 우기 석달동안 바깥출입을 삼가는 것을 규율로 정하고 출가자들이 한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하는것을 '안거(安居, Varsa)라고 합니다..근데 안거가 인도의 브라만교에서 생겨났다고 합니다.글타면 석가모니께서 '표절'ㅋㅋ농담입니다

..안거라는 것이 우기만 그런게 아니고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북방에서는 겨울철 안거를 한다고 그럽니다..무쟈게 추우면 스님도 춥자나요..^^;; 안거를 할때 가장 중요한게 규율을 정하는것과 공동생활을 할 장소...규율은 석가모니가 정하지만 생활을 할 장소는 오로지 신도들의 시주에 의해서만 했다는거죠..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안거할 장소를 마련하게 된 것이 지금의 절이 된겁니다.최초의 안거 장소가 죽림정사라고 합니다.절을 뜻하는 사(寺)라고 하는 것은 원래 중국의 관청 부서의 명칭이었다고 합니다.재미있는건 외국인을 접대하는 홍로사에 맨 먼저 오신 분이 스님이었기 때문에 뒷날 스님이 머무시는 곳은 모두 '사'라고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교에 문외한 제가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나 심히 걱정이 됩니다...틀린 부분 있어면 꼭!!!!!!! 지적해 주십시오!!!

 

↑↑·↓↓ 굴참나무 숲입니다.

◈일주문을 올라오다보면 제일 먼저 영사각(永思閣)과 비림을 볼수가 있습니다.바로 옆에 가람신각(伽藍神閣)이 있습니다.가람수호를 기원하는 외가람각으로써 가람각은 죽은 자의 혼을 실은 영가(영혼)가 경내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모셔지는 곳으로, 이곳에서 영가는 속세의 떼를 벗는 목욕을 하게 됩니다. 이런 가람각이 표충사 사당내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가람각

[참조:표충사 홈피에는 외가람각을 영사각이라고 되어있더군요..오타아닌가요??]

이런 가람각은 일반 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종교적 건물인데 토속신앙과 연관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가람각(우측)내부에는 ‘나무가람수호신위(南無伽藍守護神位)’란 목패(木牌)가 봉안되어 있습니다.=>절을 지켜주는 귀신을 믿고 의지한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나요??ㅎㅎ d토삼b은 정말 무식해요 ^^;;

 ▣ 다른분 설명으로는 외가람각은 '비구스님(남자스님)을 지키는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라고 하네요,내가람각은 ‘사찰을 지키는 신’에게 예배를 올리는 곳이라고 하는데 내가람각은 알고 있죠,,우리도,,^^*

↑↑ 영사각입니다.여기에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있는데 영세불망비라는건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비석입니다..여기 영사각에는 '가의대부 행 참판김공종원 영세불망비'가 있습니다..가의대부라 하면 조선시대 종2품 상계(上階) 문관의 품계인데..여기에 해당하는 관직이 우리가 잘아는 '의금부'가 있습니다. 가의대부라고 했어니 참판이 맞죠..참판(淙判)이 종2품..지금으로 치면 차관급(?)에 해당하겠죠.호칭은 '영감'

↑↑ 각종 비림입니다.

↑↑ 멀리 수충루가 보이는데..여기 참나무에 대한 얘기를 좀 할까 합니다..표충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중 '관문'님의 블로그에서 읽었는데 그분 글을 조금 발췌하면..

'참나무로 이루어진 신성한 숲의 사례는 종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종묘는 조선시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신성한 공간으로, 그 특성상 세속적인 주변 공간과 격리되어야 했고,따라서 종묘 주변은 성속의 차폐 수단으로 숲이 조성되었다.조상들은 성속을 가르는 차폐 기능을 극대화하고자 정전 주변의 숲에는 가벼워 보이는 꽃나무나 화려한 단풍이 드는 나무를 대신에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갈색 톤의 참나무류를 많이 심었다.'

→ 단순 참나무를 심은게 아니라 최대 경건함을 표하기 위해 스님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을 저 길을 '관문'님은 정말 예리하게 보셨습니다.이 지면을 빌어 감사합니다..^----^(그런데 관문님 말씀으로는 오래전에 참나무로 만들지 않았나 하셨는데...나무는 오래전부터 있었던것 같은데 표충사의 몇몇 이건 공사로 일주문도 새로만들고 수충루를 중문격으로 하기전에는 우화루와 범종사이가 입구로 미루어 볼때 외가람각 주변은 현대에 와서 만들지 않았나 추측해봅니다.)

↑↑ 수충루 옆에 붙어 있는 현수막...이게 무슨말인가?? 한때 종교 편향 문제로 시끄러웠죠..실은 그거랑은 관련(?)이 없습니다.토삼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자연공원법이 1960년대에 제정되었는데 사찰경내지가 공원법에 있는게 젤 큰문제라고 합니다..조금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창경궁을 창경원이라고 부르는거랑 똑같습니다.사찰이 공원이 될수 없죠...또한 법으로 묶여 있다보니 사찰의 정상적인 재산권도 행사 할 수 없고,,또 한편으로는 뭐~공원입장료라고 조금 말이 많았죠..최근에는 공원법을 바꾼답시고 지리산에 케이블 설치로 말이 많습니다.일단 이 문제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사실 아는게 없어서요..--;;)

↑↑ 주차장입니다..차를 타고 입구까지 바로 올 수는 있습니다.....허나 이 주차장도 조만간 폐쇄한답니다..입장료 받는 곳으로 옮깁니다.사실 이게 옮기는게 맞죠..주차장으로 인하여 '일주문'의 의미가 없어졌어니~~~

↑↑ 수충루(酬忠樓)입니다.보통 사찰은 일주문 이후 사천왕문이 나와야 하는데 특이하게도 서원 형태의 수충루가 중문역할을 하고 있습니다.그러면 여기서 표충사 전체 구조도를 보겠습니다...

↑↑ 1구역,2구역,3구역이 보이시죠..그냥 쉽게 1층,2층,3층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실제로 층층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표충사는 사당도 같이 있습니다..바로 1구역이 사당을 모시는 곳이죠..2구역이 실제 가람의 시작이라고 보셔야 합니다.왜 이렇게 되었는지 표충사의 역사를 보자면~~~
1000년의 고찰(古刹) 표충사

  1. 신라 무열왕 원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지금의 극락암 자리에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어느 날 아침 재약산록을 바라보니 대밭 속에서 오색 서운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다 가람을 창건하고 이름을 죽림사(竹林寺)라고 하였다.
  2. 829(기유)년 신라 42대 흥덕왕 4년 인도스님 황면선사(黃面禪師)가 부처님 진신사리 3개를 모시고 동방의 수려한 강산을 찾던 중 이곳 재약산에서 오색 서운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삼층석탑을 세워 석가여래 진신사리를 봉안.
    흥덕왕 셋째 아들이 나병에 걸려 명약을 찾던중 영정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쳤다.이에 국왕이 사를 친방하여 크게 칭송하니 사양하여 말씀하시되  “산초와 류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니 국왕이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부흥시키며  사찰명을 재약산 영정사(靈井寺)라 개칭 하사하시였다.
  3. 889(기유)년 신라 50대 진성여왕 3년 보우국사(普佑國師)가 승려 약 500명을 모아 선풍을 크게 일으키니 국내제이선찰이라고 하였다.
  4. 1067(정미)년 고려 제11대 문종왕 21년 해린국사께서 보우국사의 뒤를 이어 주석하였고,이어서 해린국사의 법맥을 이은 보각국존 일연께서 주석하니 일천여명의 대중들이 운집하여 선풍을 크게 떨치었다.
    ▒ 여기서 잠깐!!
    삼복제 [三覆制] : 고려의 일반범죄 재판은 단심(單審)이나,문종왕이 이르기를 '인명지중 사자불가재생(人命至重死者不可再生)'이라 하여 사죄(死罪)에 한하여 삼복제, 즉 삼심제를 실시하였다. (우리조상님들 대단하시죠..죽을 죄를 지은자만큼은 세번의 재판할 기회를 줬어니...)이 삼복제는 조선시대에도 계속되어 1397년(태조 6) 《경제육전》 형전에 법제화되었다.

  5. 1286(병술)년 고려 제25대 충렬왕 12년 국왕께서 친방하여 “일국지명산이요 동방제일선찰”이라 명명하였다. 이때 보각국존 일연께서 삼국유사를 탈고하니  때가 1289(기축)년 충렬왕 15년 3월이었다"
  6. 1592(임진)년 조선 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천년보찰” 모두가 전화를 입어 사찰의 정세는 몰락하고 수많은 승려들은 의병승으로 동참하였다.
  7. 1596(병신)년 선조 29년 왜적이 마지막 퇴각할 때,사명대사께서 왜군의 재침을 막기 위하여 영정사에 의승병 훈련소를 설치 사자평에서 의승병을 훈련시키였다.
  8. 1679(기미)년 숙종 5년 또 큰 화재를 만나 법당·명부전·선방등이 소실됨
  9. 1681(신유)년 숙종 7년 주지 도한께서 신일스님과 계화스님등의 힘을 모아 명부전을 복원하고 부속건물을 보수하였다.이때 영정사는 팔법당 사지전 십칠부속 건물과 십오개 암자를 두었다.
    조선후기에 거듭되는 불교탄압에 사역과 관폐가 극심하여 사찰의 재정도 피폐해지고 대중들도 흩어지니 사찰의 정세는 또다시 기울게 되었다.
  10. 1800(경신)년 정조 24년 대광전·명부전·관음전등 4개 법당과 원통요 남계요 두 요사와 산내는 내원암·동상암·서상암 등의 암자와  비비정만 남았다.
  11. 1839(기해)년 헌종 5년 봄 사명대사 팔대 법손 태허당 남붕화상께서 페허가 된 표충사당(경남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영취산  백하암)을 보고 통탄하여 밀양부사의 협조를 얻어 사당을  영정사 큰 사찰로 옮길 것을 상소하니 국왕께서 윤허하여 월파당 천유화상께서 령정사내로 옮기므로 표충서원으로 추증 사액하였다.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유교적인 서원으로서의 제도와 규범을 엄수 할 것을 서약하였다.국왕은 표충서원이라는 사액을 내리면서 사관을 보내 국왕을 대신하여 춘추제향을 올리게 하고 제비는 국비로 하며 사내의 대중들은 사역과 조세를 면제토록  하였다.

    당시 이건 내용을 보면 관음전을 헐고 사당을 지어 삼대선사의 위패를 모시고 명부전을 헐고 영각을 지어  삼대선사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또 칠문의 정문을 개조하여 “의중당”의 현판을 달고 그 좌우에 방사를 넣어  동서재로 삼고 사명당·영각·의중당을 중심으로 예제문,자하문, 수충루등의 부속건물을 신축하여 서원의 특징을 갖추고 사찰 이름을 재약산 표충사(表忠寺)라 개칭 사액하였다. 당시 월파선사는 “팔도도총섭”의 직책을 맡아 전국 사찰의 승려들을 규정하였다.
  12. 1857(정사)년 철종 8년 명부전을 다시 지었다.
  13. 1860(경신)년 철종 11년 봄 월암선사께서 경내 서북쪽에 사팔서원을 상징하는  사십팔문의 건물을 지어 "동림고사"라 하였다.당시 월암선사께서 그의 조실인 혜원선사에 발심하여 만일기도 끝에 지은 건물이라 하여 일명 "만일루(萬日樓)"라 하였다.
  14. 1911(신해)년 왜정2년 6월 일제의 조선총독부에서 공포한 "사찰령"에 의하여  표충사는  삼십일본산중 통도사의 말사로 편입되였다.
  15. 1919(기미)년 본사 재적 승려인 이찰수 오학성 손영식 김성흡 이장옥등이 삼일운동 선언문에 찬동하여 우리는 생명을 함께 한다는 취지문을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외치다 투옥되었다.
  16. 1926(병인)년 큰 화재가 일어나 가람이 전소되고 응진전만 남았으며 의중당과 표충서원도 일부가 불에 소실되었다.
  17.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었다.

 

↑↑ 표충사 연혁을 공식홈페이지에서 참고중 위에 캡처한 이미지처럼 1919(기미)년과 1926년(병인)년이 중복 게재되어 있더군요..사람이 일을 하다보면 실수를 할 수 있죠..^^;; 빠른시간내에 교정 부탁드립니다..

↑↑·↓↓수충루와 사당영역안 동영상입니다.

↑↑ 수충루 뒷 모습입니다.

↑↑ 수충루를 통과해서 사당영역으로 들어오니 화살표가 가리키는게 사천왕문입니다..원래는 사천왕문이 나와야하는데 표충사만의 특징이겠죠..

↑↑ 수충루를 통과해서 좌측편입니다..여기에는 사당의 모습과 서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습니다.

↑↑ 수충루를 통과해서 우측편입니다.설법전이 보입니다..우선 좌측부터 보겠습니다.

↑↑ 유물관..화살표가 가리키는게 예전 소화기구랍니다. 유물관에는 사명대사와 관련된 16건 79점의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그중에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4년(선조37년)에 사명대사가 강화사절로 일본에 갈 때 그 호송문제와 임진왜란때 잡혀간 조선포로의 송환문제를 다툰문서,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비명을 새긴목판, 서산대사의 사적을 새긴 목판, 다라니경목판, 금강반야바라밀경, 불설아미타경 등과 같은 불경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맨왼쪽이 목재함(木材函)입니다.이런걸 구시라고 하죠(?)..걍~밥통.너비 85cm,길이 597cm 물론 밥도 담았지만 설명에 의하면 조선후기 승려들에게 종이 만드는 지역(紙役)이 부과되었을 때에 쓰이던 것으로 추정된다 라고 하더군요(?). 맨 우측에 있는게 철확(鐵鑊)입니다.철확이란게 '쇠로 만든, 발이 없는 큰 솥'입니다..걍 솥이라고 하면 됩니다.

↑↑ 표충사(表忠祠)입니다..사당[각주:5](祠堂)이죠..사당에 대해서는 각주 참조!!

↑↑ 내부에는 사명대사ㆍ서산대사ㆍ기허대사의 진영(眞影,초상화)을 봉안하고,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습니다.1839년(헌종 5)에 이건하면서 대광전 옆 지금의 팔상전이 있는 곳에 위치해 표충서원이란 이름으로 있었으나 이후 1971년 팔상전과 자리를 바꾸었으며,최근에 가람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어 표충사라고 편액하였습니다.

↑↑ 표충서원 (表忠書院)입니다.1972년 2월 12일 경남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서 구국의 큰 공을 세운 휴정(休靜:西山大師,서산대사)·유정(惟政:四溟大師,사명대사)·기허당(騎虛堂,기허대사) 3대사의 충렬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祠堂)으로 설립하고 선조로부터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고 합니다.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가장 간단한 지붕형식,그외에 우진각지붕,팔작지붕의 3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들 형식이 기본형이 되어 여러 가지 복합형을 형성하였다.) 건물이며 불교사찰 내의 유교식 서원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서원 내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3대사 모두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일으킨 분들입니다. 불교는 모름지기 살생을 금하는데 어찌하여 스님들이 전쟁터에 참전했을까?? 어느 불자님의 글을 발췌했습니다.

'불교의 핵심계율 중 하나인 불살생을 어기면서까지 전쟁에 나선 이유는 바로 이 시대적인 책임과 역할 때문이 아닐까요? 비록 내가 살생으로 인해 지옥에 떨어지고 그로 인해 성불의 길이 그만큼 더뎌진다 하더라도 이 시대에 태어난 것도 스스로가 받아들여야할 업이라는 것.그 분들이 고고한척 산속에 숨어 수행만을 했었어야 할까요?'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시나요??

서산대사(西山大師)는 봉은사(奉恩寺) 주지도 하셨습니다. 봉은사 아시죠?? 봉은사 명진 스님과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바로 그 봉은사 주지를 서산대사도 하셨습니다. 여튼,서산대사가 승병(僧兵)을 일으킬때 73세였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때 70이라면 대단하지 않나요?? 노구를 이끌고 명나라 군대와 함께 한양수복에 큰 공을 세웠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사명대사(四溟大師) 또한 승병을 일으키고 서산대사 휘하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평양을 수복하고 도원수 권율과 의령에서 왜군을 격파 전공을 세웠다고 합니다.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서산대사는 2년후 승병을 사명대사에게 맡겼습니다.그도 그럴것이 서산대사가 70이 넘었어니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정유재란(丁酉再亂) 때는 명나라 장수 마귀(麻貴)와 함께 울산(蔚山)의 도산(島山)과 순천(順天) 예교(曳橋)에서 전공을 세웠습니다. 선조 37년 국왕의 친서를 휴대하고, 일본에 건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강)를 만나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500명을 인솔하여 귀국했습니다.

기허대사(騎虛大師)라 하면 700의총(義塚) 아시죠?? 바로 그분입니다. 최초로 승병을 일으키셨죠..500명의 승병을 모아 의병장 조헌(趙憲)과 함께 청주(淸州)를 수복하였습니다.전라도로 향하는 왜군을 공격하기 위해 금산(錦山)에서 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조헌 등 700의사(義士)와 함께 순국하였습니다.

↑↑ 표충사당 앞에서 본 모습입니다.즉,수충루를 통과해서 우측편이 되겠죠.

↑↑설법전(說法殿) 의중당이 사명대사의 호국사상을 선양하기 위한 법회를 열어 그 정신을 전승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설법전이란 곳이 절의 강당(講堂, auditorium)입니다.강당 아시죠? 학교 다닐때 강당 있었자나요..그겁니다..

↑↑ 설법전 옆으로 가니 왠 소방차(?)

↑↑ ㅎㅎ 불교 마크 소방차 상당히 이채롭습니다.이거 한대로 제대로 될라낭????

↑↑ 설법전을 돌아 맨 왼쪽 건물이 당연히 설법전이죠.ㅎ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이 탐진당(探眞堂) 출입문입니다.표충사에서는 공양간으로 사용한다고 들었는데 맞는지는 저도 잘--;; 탐진당 용도는 절마다 조금씩 틀려서요..^^;; ㅋ

↑↑ 설법전 위~ 화살표 가리키는 곳에 뭐가 보이시나요?

↑↑ 새한마리~ 엄청 폼잡고 있네요~

↑↑ 컥~용머리 위에 까마귀라~~

↑↑ 사당 영역 중앙으로 와서 사천왕문이 보입니다..일단 올라가봅시다.

↑↑ 사천왕문에서 뒤로 돌아!!! 넓찍한 사당 마당이 보입니다.가람각이 뭔지 아시죠? 위에 열심히 설명했습니다.기념품관 옆에는 찻집도 있어요^^*

↑↑ 사천왕문~원래는 중문인데 수충루한테 자리를 빼앗긴건가요?ㅎ 일단 표충사쪽 설명입니다.

'표충사의 사당(祠堂) 영역과 사원(寺院) 영역을 구분하고 있는 사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원래는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 앞쪽에 사천왕문이 있었으나,최근 사당영역을 새롭게 조성하고 절의 진입로를 옮기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내부에는 근래에 조성한 목조사천왕상과 함께 현대의 불모(佛母) 석정(石鼎) 스님이 조성한 사천왕탱이 봉안되어 있다.'

→ 가람 재배치를 하면서 옮긴거죠..대광전쪽에 들어가면 따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사천왕 (四天王)

호세사천왕(護世四天王)이라고 하는데 우선 그 종류부터 보겠습니다. (아래 내용은 천지일보에서 발췌)

동쪽은 지국천왕(持國天王)으로 손에 칼을 들고 있으며 인간 감정 중 기쁨의 세계를 관장합니다. 계절 중에서는 봄을 관장하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기만 맡는다는 음악의 신인 건달바와 부단나의 신을 거느리며 동쪽 하늘을 지배하고, 동쪽을 상징하는 청색을 띠며, 착한 이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 이에게는 벌을 준다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남쪽은 증장천왕(增長天王)으로 손에 용과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사랑의 감정을 주관하고, 여름을 관장합니다. 구반다(사람의 정기를 빨아먹는 귀신 말머리에 사람의 몸을 취하고 있다)와 아귀를 거느리고 남쪽 하늘을 다스리고 있고, 남쪽을 상징하는 적색을 띠며, 만물을 소생시키는 덕을 베푼다고 하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서쪽은 광목천왕(廣目天王)으로 손에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있으며 노여움의 감정을 주관합니다. 가을을 관장하고 용과 혈육 귀로 불리는 비사사 신을 거느리고 서쪽 하늘을 다스리며, 얼굴색은 백색이고, 악한 자에게 고통을 주어 불법에 마음을 일으키게 한다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북쪽은 다문천왕(多聞天王)으로 손에 비파를 들고 있으며, 즐거움의 감정을 주관합니다. 겨울을 관장하며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북쪽하늘을 지배하고 있으며, 얼굴색은 흑색이고, 어둠 속에서 헤매는 중생을 인도한다는 상징적인 뜻이 있습니다.

사천왕의 발밑에는 ‘생령좌’라는 귀신을 두어 권선징악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의 죄로 인해 다음 생에 사천왕의 발밑에 깔리는 고통을 받지나 않을까 삼가 자신의 마음을 이곳에 견주어 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령좌의 모습은 일정하지 않으며 때로는 남자로, 때로는 원망 섞인 표정의 여자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하던 귀신들의 왕이었는데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수미산(고대 인도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상상의 산) 정상의 중앙부에 있는 제석천(帝釋天 , 불교에서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고대 인도 힌두교의 신 인드라를 불교에서 수용한 것이다.)을 섬기며, 불법(佛法)뿐 아니라,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들을 수호하는 호법신이다. 사대천왕은 욕계육천(欲界六天)의 최하위를 차지합니다. 제석천과 육계육천을 더 설명하자면,~

사천왕은 여러 단계나 되는 천상계 중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천왕천이라는 하늘나라에 살며 그 나라의 왕인 제석천왕(帝釋天王)의 지시에 따라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이 세계를 크게 둘로 나누어 하나는 "깨달음의 세계-오계(悟界)" "헤맴의 세계-미계(迷界)" 로 나눈다. 이것을 다시 세분해서 십계[十界] 아래와 같다.

1.지옥[地獄] 2.아귀[餓鬼] 3.축생[畜生] 4.아수라[阿修羅] 5.인간[人間] 6.천[] 7.성문[聲聞] 8.연각[緣覺] 9.보살[菩薩] 10.불[]

 위의 내용과 같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들의 6단계는 범부[凡夫]가 스스로 지은 업[]에 따라 생사를 거듭하며 끝없이 윤회하는"헤맴의 세계" 이며 성문.연각.보살.불의 세계는 오랜 세월 수행 공덕으로 깨달음을 얻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난 성자[聖者]의 세계인 "깨달음의 세계"라고 한다. 미혹[迷惑]의 세계 가운데도 특히 지옥.아귀.축생은 삼악도[三惡道]라고 하는데 많은 고통이 따른 세계이다. 그러한 천[]가운데 사천왕이 사는 사천왕천은 가장 낮은 천이라고 한다. 사천왕들은 수미산에 살면서 동서남북 사방을 지키고 불법을 수호하고 불도를 닦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 또 사천왕과 그 부하들은 온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이 세상의 선악을 모두 살펴서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부하들이 14일에는 사천왕의 태자들이 15일에는 사천왕 자신들이 제석천[帝釋]에게 직접 보고하는 중대한 일을 하고 있다.(이상 여기까지 '역사공부방'에서 발췌)

욕계육천 (欲界六天) = 육욕천(六欲天) 또는 육천(六天). 삼계(三界) 가운데에 욕계(欲界)에 딸린 여섯 종의 하늘을 말함이니, 곧 사왕천(四王天),도리천(忉利天),야마천(夜摩天),도솔타천(兜率陁天),화락천(化樂天),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 등임. 이 육천 가운데에서 사왕천은 수미산(須彌山) 허리에 있고, 도리천은 수미산 정수리(꼭대기)에 있으므로 지거천(地居天)이라 말하며 이 도리천에 제석천왕이 산다. 야마천,도솔타천(도솔천),화락천,타화자재천은 다 구름을 붙여서 허공(虛空)에 있으므로 공거천(空居天)이라 말합니다.

무작정 퍼나르기와 발췌로 d토끼삼촌b도 뭔말인지 몰겠슴!!!!!!!!!!!!!!!

 

↑↑ 사천왕문 구조도입니다.보시면 딱알겠죠?? 물론 연대별로 사찰별로 얼굴 모양,색깔,손에 쥐고 있는 물건 조금씩 다릅니다.

↑↑ 왼쪽이 남방 증장천왕 오른쪽이 서방 광목천왕
→ 원래는 대광전 맞은편 우화루 앞쪽에 사천왕문이 있었으나,사당영역을 새롭게 조성하고 절의 진입로를 옮기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습니다.

↑↑ 왼쪽이 북방 다문천왕 오른쪽이 동방 지국천왕

↑↑ 사천왕문 뒷모습입니다. 우측에 살짝보이는 건물이 종무소라고 표충사 사무를 보는 곳인데 예전 유물관이었습니다.

↑↑ 사천왕문을 통과해서 종무소를 지나 넓찍한 마당이 나옵니다..여기가 표충사 전체 구조도에서 설명한 2구역,,2층이라고 보시면 됩니다.혹시나 해서 2구역이라는건 설명을 돕고자 d토끼삼촌b이 임의로 붙인겁니다.착오없어시기 바랍니다!!!!!

↑↑ 보물 제467호 지정일 : 1968년12월19일 통일신라시대. 자세한 설명은 표충사 홈피에서 발췌.

'이 곳은 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다.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전한다.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였고,가람배치도 큰 이동이 있었던 것이니 이 탑도 그 때에 옮겨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기단(基壇)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다.탑신부(塔身部)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다.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식은 없다.2층 몸돌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3층도 체감되어 있다.또한 2·3층의 몸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으나 너비는 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좁아졌다.지붕돌은 밑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며,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다.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얹혀져 있으나 정돈되지는 못하고,그 위에 1m 가량의 끝이 뾰족한 쇠막대를 세웠다.

탑신부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커다란 단점이 있으나,기단이 1단으로 구성된 신라석탑양식을 따른 아담한 탑이다.탑의 머리장식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 석등 => 경남 유형문화재 제14호 지정일 : 1972년 2월12일
길쭉한 기둥 위에 받침돌,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 지붕돌을 차례대로 올린 일반적인 형태로, 각 부재가 8각을 이루고 있다.윗받침돌은 연꽃을 새겨 장식하였고,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었다.지붕돌은 모서리 부분의 파손이 심하며 꼭대기에는 간략한 구조의 머리장식을 올리고 있다.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석등의 양식을 보이고 있으나, 조각수법과 규모로 볼 때 시대가 조금 뒤떨어진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잠깐!! 탑에 대해서 조금 알고 갑시다!!

탑(塔婆,탑파) 탑파는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에 어원을 둔 단어로 부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일종의 무덤 건축물을 의미한다. 불탑 혹은 그냥 줄여서 ‘탑’이라고도 한다.법당이 있으면 탑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불교신앙의 원류를 고찰해 볼때 법당보다도 탑이 먼저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왜냐면 법당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상이 조성된 후에 지어졌다고 보겠고 탑은 불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불교신앙이 기본이 된다고 할 수 있다.탑은 부처님 이전부터 인도에 있었던 것이지만 불교의 탑으로서 그 기원을 찾는다면 부처님을 독실히 신봉하는 한 제자가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다른 곳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그때에 그 제자는 "제가 세존을 떠나서 멀리 있는 동안 항상 부처님을 마음 한곳에 모실 수 있는 어떤 증표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때에 부처님께서 머리카락을 잘라주시며 그것을 탑과 같이 만들어진 곳에다가 넣고 모발이 들어있는 탑 같은 형태에 항상 예불을 드리고 가까이 하면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그때부터 사실상으로 불교의 탑은 원시적인 기원이 되었다고 볼 수가 있는데 통상 탑을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그 사리를 모신 무덤이라고 보면 됩니다.진신사리(眞身舍利)는 부처님 유골입니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는 탑이 있으면서 법당에다가 부처님을 안 모시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를 보궁(寶宮)이라고 한다. 이때에는 당탑의 구분이 아니고 바로 부처님 사리를 모신 그 탑이 기본이 되고 본당이 되는 것입니다.우리나라에는 5개 절에서 부처님 사리를 모시고 있는데 이 절들을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하는데 양산의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가 있습니다.

↑↑ 만일루(萬日樓)입니다.제가 갔을때는 공사중이었습니다. 1985년 11월 14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42호로 지정.조선시대인 1860년(철종 11)에 월암선사(月庵禪師)가 혜원법사(慧遠法師)의 유풍을 떨치고자 만일(萬日)의 기도 끝에 이룩한 건물이라고 합니다. 1926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29년 중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92년에 보수된 것입니다.

↑↑ 대홍원전(大弘願殿)은 일반인들을 위한 시민선방입니다.내부에는 금동지장보살좌상과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습니다.일연이 '삼국유사'를 탈고 한 곳이 대홍원전내 죽원정사인지 옆에 있는 원통당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대홍원전 뒷편으로는 삼청각(도교에서 신선이 사는집 옥청(玉淸)·상청(上淸)·태청(太淸)),탐진당,수선당(올바른 행과 참선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해행당(解行堂)이라는 현판을 붙이기도 한다,)수중원,창고 등이 있는데 일반관광객은 출입금지입니다.표충사 사이트에서도 설명이 없습니다.

↑↑ 영각(影閣)이라 하면 불교에서는 고승(高僧)의 초상을 모신 전각입니다. 내부에는 근래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과 함께 표충사를 빛낸 역대 조사스님들과 중창주들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습니다.이들 영정은 모두 22점으로 표충사(表忠祠)에 봉안되어 있는 사명대사,서산대사,기허대사의 영정과 함께 모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68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영각을 지을때 따로 지을 때도 있고, 고승이 거처하였던 방을 영각으로 삼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여러 승려들의 초상화를 함께 모실 경우에는 주로 조사당(祖師堂)이라 합니다.

↑↑ 영정약수(靈井藥水) 이 물을 마시고 나병을 치료했다고 하는데~ 그거야 글타치고 이 약수터도 원래 위치가 아니라고 합니다.본시 표충사가 큰불로 몇번이나 소실되었고 이래저래 옮긴 것도 많다보니~~

↑↑ 바위에 새겨진 부처 '불'자 바탕이 검은색인데 다른 자료를 보니 전에는 붉은색이었더군요.

↑↑ 영정약수 옆길로 올라서면 대광전의 넓은 마당이 나옵니다. 마지막 3구역이 되겠죠..

↑↑ 팔상전(八相殿)은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가지로 나누어 표현한 탱화(幀畵)와 존상을 모시는 법당입니다.우리나라의 절에서 언제부터 팔상전이라는 전각을 짓고 그 안에 불상과 불화를 봉안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탱화(幀畵)라 하면 불교의 신앙 내용을 그린 그림입니다.한국의 사찰은 어디든지 신앙대상으로 불상을 봉안하고 그 뒤에 탱화가 걸려 있게 마련인데 일본이나 중국 등지의 사찰에는 이와 같은 탱화가 없다고 합니다.

경남 문화재자료 제141호.  1854년(철종 5년)에 당시 주지였던 환월선사(幻月禪師)가 창건하였으며,1926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9년에 중창한 것이라고 한다.원래 위치는 현재 종무소가 있는 자리이고 지금의 위치에는 표충서원이 있었으나,세월이 흐르는 동안 일부 승려들이 사찰 내에 유교식 서원의 존재가 불가할 뿐 아니라 대광전과 나란히 사당을 둔다는 것은 불경(不敬)하다는 지적이 있어 1971년에 자리를 맞바꾼 것이었다.

 

팔상도(八相圖)

1)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하천(下天)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 태어나는 장면,탁태(托胎)

3)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강탄(降誕)

4)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출가(出家)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항마(降魔)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 시키는 장면,성도(成道)

7) 녹야전법상(鹿野轉法相): 성불 후 녹야원에서 초전설법하는 장면,전법륜(轉法輪)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등,입열반(入涅槃)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출처] 팔상전(八相殿)|작성자 김종연

법주사 팔상전이 유명하죠..팔상도 이미지를 같이 올리면 더 좋겠지만 팔상도는 다음 포스트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팔상전과 대광전 사이 뒷쪽에 산신각이 있습니다. 민간 신앙을 불교에 흡수한거죠..

↑↑ 대광전(大光殿)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깊이 신봉 되어온 삼존불(三尊佛)을 봉안하고 있다.삼존불은 석가모니불(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형상화함),약사여래불(동방 유리광세계의 주인.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하고 의복, 음식  등을 만족하게 하는 등의 12대 서원을 세운 부처님이며, 손에 약함을 들고 있음),아미타불(서방 극락세계를 주관하시며 그의 광명과 자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 세계에까지 미치며 그 광명을 받은 사람은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고 함)

↑↑ 표충사 대광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131호로 지정.신라시대에 창건하였다고 하나, 화재나 병화(兵火)로 소실되어 중건, 중수 되어서 현재의 전각은 조선 후기라고 합니다.

↑↑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문칸은 정면 5칸 모두가 빗살문으로 가운데 3칸은 사분합의 문을, 양쪽 2칸에는 이분합의 문을 달았는데, 들어올려 차양으로 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활주를 세워놓았는데 앞에는 팔각기둥 두개를 뒤에 두개는 원형기둥을 세워 놓았는게 특이합니다.위 이미지에 보면 대충은 보이시죠?

↑↑ 앞쪽은 확실히 팔각인게 보일겁니다.

↑↑ 기둥의 용머리 조각과 추녀의 장식들이 화려하고 섬세하며,기둥과 기둥 위의 장식들의 간격이 동일하게 배치되어 균형미를 잘 살리고 있습니다.

↑↑·↓↓ 표충사 대광전의 공포 (栱包)는 내4출목(內四出目), 외3출목(外三出目)의 다포식입니다.그러면 공포(栱包)가 뭐냐? '한국·일본·중국 등지의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 같은 데 짜맞추어 댄 나무 부재로, 건물의 가장 중요한 의장적(意匠的) 표현으로서 장식의 기능도 겸하는데, 그 형식에 따라 주심포식(柱心包式), 다포식(多包式), 익공식(翼工式) 으로 나뉘어진다.'라고 하네요.^^;;ㅋ

↑↑ 표충사 대광전의 공포는 다포식이라고 했습니다.말을 거꾸로 하면 다포식 건물이라는 것은 공포가 많다는 뜻입니다.좀 더 풀어서 설명하자면 공포란 기둥과 지붕 사이에 위치하는 구조물로서,지붕의 무게를 기둥으로 적절히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쇠꼬챙이를 망치로 나무에 박으려면 잘 되지 않지요.

그래서 압정이나 못을 보면 위쪽에 넓적한 머리를 만들어서 망치로 쳤을 때 그 충격이 뾰족한 끝까지 잘 전달되도록 하는 거지요.공포가 마치 못의 머리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지붕의 무게가 기둥으로 잘 전달되어 기둥이 지붕을 제대로 받칠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공포는 기둥의 바로 위에만 올리는 것이 기본이지만 공포의 복잡한 모양 덕분에 장식 효과가 뛰어나서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올리기도 합니다.기둥 위에만 공포를 올린 것을 '주심포식'이라고 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올린 것을 '다포식'이라고 합니다.이때 기둥과 기둥 사이에 올려진 공포는 지붕을 받치는 효과는 없고 단지 장식의 역할만 하는 겁니다 (이상 지식인 kwy4679님의 설명이었습니다.)

↑↑·↓↓ 자료를 찾다보니 지붕위에도 중요한걸 몰랐습니다.--;; 있는 사진 조합을 해봤는데요 위에 사진처럼 보이는게 찰간대(刹竿臺)라고 합니다.우리나라의 유명사찰에는 거의 전부가 잡상(雜像)이나 치미, 취두, 용두 등을 지붕에 장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 밀양 표충사는 특별하게도 유, 불 ,선(도)의 삼교 일치를 두드러지게 표방하여 우리나라에서 서원이 함께 공존하는 유일한 가람입니다. 특히 대광전은 도교적인 잡상(雜像)을 지붕에 장식하고, 지붕의 한 가운데에『찰간대(刹竿臺)』를 세워 큰스님이 많이 나온다는 표식을 해 두었습니다.(여기까지  천부인권님의 블로그에서 발췌)

찰간대는 절 앞에 돌이나 쇠로 만들어 높이 세운 기둥으로서 당간(幢竿), 당번(幢幡)이라고도 하는데,옛날에 덕이 높은 스님이 계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절 앞에 세운 깃대를 말합니다. 찰간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원불교 교의교당' 글을 한번 읽어보기 바랍니다.

↑↑ 법당이라 하면 불보살을 모신 가장 중심부가 되는 건물로서 당호는 전(展)을 사용합니다. 예컨대 대웅전, 관음전, 비로전과 같은 건물이 법당이며 어느 부처님, 혹은 어느 보살님을 모셨느냐에 따라 불당의 명칭이 다음과 같이 달라집니다.

①대웅전(大雄殿):석가모니를 모신 법당을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 하는데 대웅은 석가모니의 다른 호칭이며 큰 장부-대장부-라는 뜻이다.

②비로전(毘盧殿):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며 대광명전(大光明殿) 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도 한다.

③극락전(極樂殿):서방정토의 주불이신 아미타불을 모신 법당이며 극락보전, 미타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④미륵전(彌勒殿):미래에 오실 부처님이신 미륵불을 봉안한 법당인데, 미륵불의 계시는 세 계를 용화세계라 하기 때문에 용화전(龍華殿)이라고도 한다.

⑤약사전(藥師殿):중새의 재난과 질병을 없애고 고난에서 중생을 구해주시는 약사여래(藥師如來) 부처님을 모신 법당이며 만월전(滿月殿)이라고도 한다.

⑥관음전(觀音殿):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서 원통전(圓通殿), 원통보전(圓通寶殿) 또는 자비전(慈悲殿)이라고도 한다.

⑦지장전(地漿殿):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서 명부전(冥府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을 중 앙에 모시고 좌측에는 도명존자 우측에는 무독귀왕을 보처로 모시기도 한 다. 그리고 시왕(十王)을 좌, 우에 모시기도 하여 시왕전(十王殿) 또는 대원전(大願殿)이라고도 한다.

⑧팔상전(八相殿):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부문-八相-으로 나누어, 여덟 폭의 그림으로 모 시고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법당이다.

* 역사공부방에서 발췌했습니다.

보통 중심이 되는 법당이 대웅전인데 밀양 표충사는 대광전입니다. 위에서 대광전 설명했죠..비로전(毘盧殿)이라 하여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Vairocana]을 모신 법당!!!!!

 

 

불상을 보면 부처님의 손 모양이 다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다릅니다.손모양을 수인이라고 하는데 비로자나불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습니다. 지권인은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펴서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오른손의 엄지손가락과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서로 대는 손모양으로 이때의 오른손은 부처님의 세계,왼손은 중생계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고 미혹과 깨달음이 하나임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비로자나불의 빛의 세계는 화려한 빛이 아니라 크나큰 고요가 깃든 빛의 세계, 즉 대정적(大靜寂)의 세계라는 뜻에서 대적광전이라는 이름을 취하였다.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은 협시불로 좌우에 보신불(報身佛)인 아미타여래(또는 盧舍那佛)와 화신불(化身佛)인 석가모니불을 각각 봉안하는데, 화신불과 보신불은 각각 그 좌우에 문수,보현,관음,대세지보살을 봉안하기도 합니다.

대광전이라면 비로자나불이 있어야 하는데 표충사 대광전에는 없습니다. 기존의 삼존불만 계실뿐~~~왜 비로자나불이 없는지는 d토끼삼촌b도 모르겠습니다..^^;;

제 블로그 사찰 관련 포스트를 보시면 불상 이미지는 거의 안보일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법당안의 불상이나 박물관 유물은 사진을 찍는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박물관이야 사진촬영금지 팻말을 보셨을겁니다..이건 글타치더라도 법당안의 불상은?? 전에 울동네 스님이 법당안의 불상은 찍는게 아니라고 갈켜주시더군요..그 후로 찍어본적이 없습니다.다른 블로그 검색해보면 전부 찍어서 올리던데!!! 제가 잘못알고 있는지~~실제 법당앞에서 카메라 플래쉬 터트린다는게 아무래도 불손해보이던데~~아니할말로 '자 ~ 부처님 김치' 이럴순 없자나요.ㅋㅋ ^^;;

↑↑·↓↓ 관음전(觀音殿)입니다.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은 법당이죠..우리가 흔히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하자나요..실제로는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일케 한다는데,,,  표충사 관음전에는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상징하는 42수 관세음보살을 모셨습니다.좌우보처로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응립해 있으며 후불탱화로는 1930년에 조성된 천수천안관세음보살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allfioryou님 글인데 한번 읽어보시고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관세음보살과 아미타불의 정확한 의미가 뜻을 알지 못하면 곧 상을 쫒게되며 기복을 바라게 하여 또다시 업을 짓고 모든것이 동시적이게 합니다.
 
우선 아미타불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_()_
 
광명과 무명이라 하여 광명을 부처라 하고 무명을 중생이라 합니다.
무명은 그 근본이 '모름'이기 때문에 늘 괴로울 수 밖에 없으며 윤회고를 겪습니다.
광명은 그 근본이 지혜이며 빛이기에 모든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러 할 때에, 광명을 지()라하며 무명을 자()라 합니다.

 
이 지는 모든것을 알고 있어 늘 무명을 바라보고 함께 합니다. 그러나 자는 이것을 모릅니다.
그 근본생명이 '모름'인 무명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광명을 보지 못하고 하나가 되어 비로소 완성되려고 하는 광명의 노력을 보지 못합니다.
그리하여 지는 큰 결심을 하게됩니다. 스스로 5겁동안 사유하여 48원을 세우고, 수십억겁동안 불국토에 몸을 나투어 결국 그 48원을 모두 이루게 됩니다. 그리하여 지는 혜()를 갖추게 됩니다.
그리하여 지혜가 완성되니 그것이 무량광입니다.
혜를 갖춘 지는 지혜가 되어 이제 그 빛이 닿지 않는곳이 없게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자신의 슬픔을 자에게 보여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무명과 하나되려는 슬픔과 노력을 자에게 전달하니 그것이 비()입니다. 자는 지의 슬픔과 노력을 깨닫고 비를 갖춰 자비가 완성되니 그것이 무량수입니다.
 
그러나 어떠합니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무명의 근본생명은 '모름'이기 때문에 광명의 슬픔인 비를 갖출 수 없습니다.  무명은 열두가지 인연이 일어나 결국 몸을 받게되니 이 몸이 가장큰 원인입니다.이제 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비에 귀의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즉 이 몸이 다할 때까지 비에게 귀의한다는 것이 '나무' 입니다.
 
또한 이 몸이 다하여 결국 자가 비를 갖춰 자비가 완성되면 무량수가 완성되는 것입니다.지혜의 완성인 무량광과 자비의 완성인 무량수가 하나되면 하나의 성품이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아미타' 입니다. 자가 이 몸이 다할 때 까지 비에게 귀의하는것이 '나무' 이니 곧 '나무아미타' 입니다.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선 몸이 있기에 아미타가 완성되지 못하지만 지()가 스스로 노력하여 이룬 48원으로 인해 존재하는 저 불국토에는 분명 아미타라는 성품이 존재하므로 그것을 이 세상에서 상으로 표현하니 '' 입니다.
"나무 아미타 불" 이 이러합니다^^

이제 우리는 나무아미타불의 뜻이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나무' 인데, 사람들이 귀의한다는 뜻을 많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저 법당에 앉혀있는 '불'에 예배공양 올리고 절하는 것이 참 귀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극락에 존재하는 아미타에 예를 표하는 것일 뿐, 참 귀의라 함은 내 스스로가 무량광을 이룰 수는 없지만, 내가 무량수를 이룰 수는 없지만, 이 몸이 다하기 전까지 그것이 완성되기 전까지 무량광의 삶을 살며 무량수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것.즉, 한없는 지혜를 얻어 많은 이들을 이롭게 하며, 한없는 자비를 갖춰 많은 이들을 위하는 삶을 사는것. 그것이 참 귀의입니다. 이리하여 완전한 열반에들어 기필코 아미타의 성품을 나의 성품으로 만들겠다.라는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 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의미는 위에 분들께서 설명을 드리셨으니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단, 제가 위에서 아미타부처님을 강조하지 않고 성품을 강조한것은 그것이 진정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관세음보살이던 아미타부처님이던 상으로써 쫒으면 아니됩니다.많은 경전에 관세음보살의 위신력과 신통력, 또는 중생을 구제하는 멋진 모습들이 많이 표현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관세음보살이 구제하는 중생중에 내가 포함되 있기만을 바란단 말이죠.그것은 신화입니다. 저 그리스의 신화와 하등 다를것이 없게됩니다.

정작 중요한것은 관세음 이라는 성품입니다. 그 대자대비의 성품을 내가 갖추려 노력하며 내가 관세음보살이 되어 많은 중생을 구제하려는 생각은 안한단 말이죠.
조금 주제에서 빗겨나가 한가지 말씀드리면, 근본불교에서 대승불교를 비판하는것 중 하나가 이 보살들입니다.왜 부처님시절에 없었던 보살들을 새로 만들어 중생을 현혹하느냐..이것인데 그것또한 상으로만 보살들을 쫒기 때문입니다.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 실천과 이타행의 보현보살, 대자대비의 관세음보살, 큰 서원의 지장보살 보십시오. 부처님이 지혜가 없으셨습니까. 부처님이 실천을 안하셨습니까. 부처님이 자비가 없으셨습니까.부처님이 서원이 없으셨습니까. 이러합니다.
이렇듯 중요한것은 그 성품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모든 보살들의 성품은 모두 부처님의 성품입니다.그것을 보살이라는 상으로써 하나의 방편법을 쓴것뿐입니다.
관세음보살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대자대비의 성품입니다. 관세음보살,, 하면 떠오르는 그런 고귀한 면사포를 뒤집어쓴 아줌마가 아니라, 바로 내가 갖추어야 할 본래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일생성불하시어, 아미타를 이루시고 관세음을 갖추시어 모든이들에게 이로운이가 되어주십시오_()_

 

↑↑ 대광전 좌측편 조금 높은곳에 있는 ~관음전은 설명 하였고요...상로전(上爐殿) => 법당에 예경을 올리는 노전 스님이 거처하는 곳..대웅전을 맡아보는 임원의 숙소!! 그냥 숙소입니다.명부전(冥府殿)은 위에 법당 설명하면서 했는데 지장 보살을 모신 법당이라 하여 지장전(地漿殿)이라고 하죠..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기능을 하는 전각입니다.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므로 사람이 죽으면 그 날로부터 49일 되는 날까지 7일째마다 차례로 7번 시왕(지옥의 심판관) 앞에 나아가 생전에 지은 죄업(罪業)의 경중과 선행,악행을 심판 받는다고 합니다. 불가에서 49재(四十九齋)를 지내는 까닭도 여기서 연유하며, 명부전에서 재를 지내는 까닭은 지장보살의 자비를 바탕으로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밝혀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하고자 하는 뜻에서입니다.

시왕(지옥의 심판관)

지옥의 심판관이라면 염라대왕(?)

네..맞죠..허지만 불교에서 염라대왕은 시왕(十王,열명의 왕)중 한명입니다.불교가 중국에 들어가 도교의 많은 부분을 흡수하면서 시왕(十王)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낳았는데, 지옥의 주인이 지장보살로 바뀌고 염라대왕은 시왕 중 하나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즉 시왕 중

다섯번째 대왕

으로 죄인의 혀를 집게로 뽑는 발설(拔舌) 지옥을 관장합니다. 사람의 육십갑자 중 그가 다루는 것은 경자생과 신축생·임인생·계유생·갑신생·을사생이며, 탄생일은 3월 8일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명부(冥府)를 주재하는 10명의 왕=시왕[十王].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사람, 하늘의 육도(道) 윤회에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이 10명의 왕을 거느림.

 10위()의 왕()이 주재하는 지옥은

 제1 진광대왕(秦廣大王)은 도산(刀山)지옥 = 칼산에 떨어지게 한다.
 제2 초강대왕(初江大王)은 확탕(鑊湯)지옥 = 끓는 물에 담근다
 제3 송제대왕(宋帝大王)은 한수(寒水)지옥 = 얼음 속에 묻는다.
 제4 오관대왕(伍官大王)은 검수(劍樹)지옥 = 칼로 몸을 벤다.
 제5 염라대왕(閻羅大王)은 발설(拔舌)지옥 = 집게로 혀를 뺀다.
 제6 변성대왕(變成大王)은 독사(毒死)지옥 = 독사로 몸을 감는다.
 제7 태산대왕(泰山大王)은 대애(碓磑)지옥 = 톱으로 몸을 자른다.
 제8 평등대왕(平等大王)은 거해(鉅解)지옥 = 뜨거운 쇠판에 올린다.
 제9 도시대왕(都市大王)은 철상(鐵床)지옥 =바람길에 앉힌다.
 제10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은 흑암(黑暗)지옥 = 암흑 속에 둔다.


불교에서는 중생은 사후(死後)에 육신을 벗어나서 자신의 전생 업보(業報)를 심판 받게 되는데, 1백일되는 날 소상과 대상을 당할 때마다 차례로 그 십대왕에게 선악업의 심판을 받는다고 함. 우리 나라 각 사원의 명부전(冥府殿),시왕전(十王殿) 등은 우리 겨레의 고유한 내세관(來世觀)과 조화를 이루면서 독특한 신앙 형태의 한 전형으로 이어져 내려옴

그럼 여기서 우리가 잘아는 염라대왕의 발설지옥을 잠시 보고 가겠습니다..음~이미지가 너무 잔인합니다..--;;

발설 지옥이라 하면 부모님과 조상님의 말에 불손하게 대꾸한 자,입으로 일가 화목을 깨뜨린 자,거짓말을 하거나 남을 비방하거나 욕설을 하는 등 구업(口嶪)을 많이 지은 사람이 죽어서 가는 지옥입니다.

형벌을 보자면 죄인은 형틀에 매달려 입에서 혀를 뽑히고, 혀를 몽둥이로 짓이겨 크게 부풀어지게 하는 고통을 받게 됩니다.부풀어진 혀 위로 밭을 갈 듯이 소가 쟁기로 혀를 갈아 엎는다.고통에 못 이겨 죽으면 다시 깨어나게 해서 또 형벌을 집행한다.그리고 죄인을 현틀에 매달고 집게로 죄인의 혀를 뽑아 버리는 벌을 준다.그러나 혀는 단 한번 뽑히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통에 못 이겨 까무러치면 다시 입속에 혀가 생겨나고 ,생겨난 혀는 또 뽑힌다.

 

군평(君平) 왈() 구설자(口舌者)는 화환지문(禍患之門)이요 멸신지부야(滅身之斧也)이니라

=군평이 말하기를,입과 혀는 화와 근심의 근본이며,몸을 망하게 하는 도끼와 같은 것이니 말을 삼가야 할지니라 하셨다.
명심보감.


발설지옥을 보면서 참 많은 걸 생각합니다.우리가 평생 거짓말을 몇번할까요? 말을 얼마나 거칠게 할까요? 얼마나 많은 뻥을 쳤을까요?? 이미지가 너무 잔인해 처음에는 제외 시킬려고 했지만 막상 보니 느끼는바가 있어서 그대로 올립니다.

발췌와 출처 : 산적두목님 블로그 서령님의 블로그

 

 

제가 어릴적 들은 이야기인데요 아주 나쁜놈이 지옥에 떨어졌는데 저승사자가 아주 다양한 지옥을 보여주면서 네가 선택하고 싶은 코스를 정해라 하니~~다른 곳은 불에 칼에 너무 무서운데~~딱 한곳..아주 큰 통에 똥이 그득한데 중간에 남자 한명이 얼굴만 내밀고 앉아 있더랍니다..그리하여 아주나쁜놈이 저승사자에게 '저는 똥통에 들어가겠습니다'라고 하니 저승사자가 다시 되물어며 '후회 없겠느냐?' 그러자 아주나쁜놈이 연신 싱글벙글 하며 '네!!!' 그러자 저승사자가 '어여 들어가도록 하여라' 신이난 아주나쁜놈은 의기양양 똥통에 들어가 먼저 와 앉아 있던 남자 옆에 앉았습니다...앉자마자 저승사자 왈 '잠수!!!!!!!!!!!!!!!!' @@ 그렇습니다..그 똥통은 한번 들어가면 100만년동안 잠수하다가 10분 휴식 하는 곳이었습니다.!!ㅋ

↑↑ 관음전 앞에서 본 모습입니다.우측 대광전 지붕을 보면 저런 모양이 팔작(八作) 지붕이라고 합니다.

 

 

맞배지붕 : 가장 간단한 지붕형식이며,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지어 책을 반쯤 펴놓은 자형으로 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두개의 지붕면이 하나의 용마루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흘러내린것'.정면에서 보면 장방형의 지붕면이 보이며, 측면에서는 지붕면 테두리(내림마루)가 보일 뿐이다. 맞배지붕은 측면 가구(架構)가 노출되므로 측면관(側面觀)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주로 곳간이나 행랑에 사용

우진각지붕 : 모임지붕집이라고도 한다.지붕 네 모서리의 추녀마루가 처마 끝에서부터 경사지게 오르면서 용마루 또는 지붕의 중앙 정상점에서 합쳐지는 형태의 집인데, 그 구조는 정면·측면·후면 쪽으로 모두 지붕면을 형성하고, 처마와 추녀를 가지고 있다. 주로 성문(城門)이나 누문(樓門)에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로는 서울 남대문(숭례문)·광화문 등이다.

팔작지붕: 우진각 지붕과 맞배지붕을 절충한 것으로 측면 용마루 부분에 삼각형의 벽을 두고 그 하부는 사면에서 처마를 형성한 지붕.집의 규모가 크거나 격을 높일 필요가 있는 사랑채 등에 사용

↑↑ 이제 우화루쪽으로 가볼까요!!

↑↑ 왼쪽이 우화루(雨花樓)이고 오른쪽이 범종루(梵鐘樓)입니다.원래 표충사 입구가 우화루와 범종루 사이었다고 합니다.대광전이 바라보는쪽이 남쪽입니다...모름지기 남향으로 짓는다고 하는데 표충사 이건 작업으로 가람의 전체적인 구조가 서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사천왕문도 옮긴 자리가 서쪽을 보고 있습니다.

↑↑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 우화루(雨花樓)에서 우화는 '하늘에서 꽃비를 내림, 부처가 설법(說法)할 때 등()의 서조(瑞兆 = 서상瑞相 = 상서로운 조짐 =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라 함'=> 부처님께서 설법할실 때 환희의 꽃비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데,이에 부처님의 설법장소를 우화,,라고 하고 그 누각을 우화루 라고 합니다.

↑↑ 야외참선 장소로 쓰인 곳이기도 합니다.

↑↑ 이쪽 산이 향로산쪽인가요??^^;;

↑↑ 범종루 종각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일반적으로 단층일 경우 각(閣)이라 하고 중층일 경우 루(樓)라고 합니다.

↑↑ 이층 누각에는 법고와 목어(나무로 만든 물고기??)가 있습니다.

↑↑범종입니다..글케 오래된 종은 아니라고 하네요..

↑↑ d토끼삼촌b은 속물이라서요...--;; 이상하게 저런게 꼭 눈에 들어옵니다...ㅋ

↑↑·↓↓재약산의 대나무 숲입니다..이건 따로 부연설명할 필요없겠죠..

↑↑ 밀양 표충사는 계절별로 정말 다양한 얼굴을 가진것 같습니다..밀양 표충사~여튼 여기까지입니다.

↑↑ 위 동영상은 표충사 전체 촬영분입니다.유튜브에 외국인들에게 소개목적으로 만들었는데~사실 너무 귀찮아서 뭐~대충 만들다 보니 영 ~별로입니다..굳이 보시고 짱내지 마시길.ㅋㅋ^^;

밀양 표충사편 포스트를 준비하면서 3주가 걸렸습니다.컥~~물론 제가 게으른것도 있었지만 솔직히 3주라고 해도 퇴근해서 2-3시간 주말에는 또 나름 볼일도 있고,ㅋ 이번 표충사편은 단순히 사진 위주의 물량 공세보다 좀 불교에 가까이 갈려고 모르는 불교 찾아보고 정리하고 글케해도 뭔말인지도 모르겠고...@@ 대충 끼워맞추고 발췌와 표절의 난무~~당최 뭐라고 올렸는지 지금봐도 오락가락합니다. 분명 틀린것도 많을겁니다..늘 드리는 말씀이 틀린게 있어면 꼭!!!!!! 지적해 주십시오...지난 3주동안 한다고 한거니 미우나 고우나 걍~봐주세요.ㅋ...자!!! 다음 정식 포스트는 군사 300으로 왜놈 2만과 맞짱뜬 '작원관지'편입니다...기대 만땅!!! (언제올린건지 기약없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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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계종의 사찰은 전국에 3천여 사찰에 달한다. 이 사찰은 25개 교구로 구분되어 관리되고 있다. 각 교구에는 교구를 관할하는 본사가 있다. 직할교구는 총무원에서 직접 관할하고 있다. 교구(敎區)란 종교(宗敎)를 펴거나 감독(監督)하려고 정(定)한 구역(區域) 구역이라는거죠 전국에 25개 구역이 있다..통도사가 15교구이고 표충사는 통도사의 밑에 있는 절이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본문으로]
  2. 벼슬한 사람이나 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 행적에 따라 왕으로부터 받은 이름.시호를 내리는 목적은 여러 신하의 선악을 구별하여 후대에 권장과 징계를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조선시대에는 죽은 자의 직품이 시호를 받을 만한 위치라면 후손들은 시호를 청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또 좋지 않은 글자가 쓰인 시호가 내려질 경우에도 다시 시호를 청하거나 개시를 청할 수 없었다.실제로 자주 사용된 글자는 문(文) ·정(貞) ·공(恭) ·양(襄) ·정(靖) ·양(良) ·효(孝) ·충(忠) ·장(莊) ·안(安) ·경(景) ·장(章) ·익(翼) ·무(武) ·경(敬) ·화(和) ·순(純) ·영(英) 등 120자 정도였다. 착한 행장이 없고 악하고 사나운 일만 있던 사람에게는 양(煬) ·황(荒) ·혹(惑) ·유(幽) ·여(厲) 등이 쓰였다. [본문으로]
  3. 뜻을 설명하기에 d토삼b은 너무 무식한 바 다음 블로그에서 뜻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http://blog.naver.com/angelsociety?Redirect=Log&logNo=20037274875 참조하세요!! [본문으로]
  4. 한자를 가지고 외국어의 음을 나타내는 일 ex)Asia를 ‘亞細亞’ [본문으로]
  5. 가묘(家廟)라고도 한다. 근원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한 것으로, 고려 말 정몽주(鄭夢周)·조준(趙浚) 등이 시행할 것을 역설하였으나 당시는 불교가 성행한 때였으므로 쉽게 실천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성리학을 국가 정교(政敎)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사당의 시행이 철저히 강요되었다. 조선 초기에는 사당을 설치하지 않은 사대부는 문책을 당하기도 하고, 또 이것이 시비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선조 이후부터는 사대부 양반층에 일반화되었고 서인(庶人)들도 이에 따랐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대청 모퉁이나 기타 적당한 곳에 부설하였다. 사당에는 3년상을 마친 신주를 모시는데, 옛날에는 집을 지으려면 반드시 먼저 사당을 세워야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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