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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민공원 잔디광장 월요일에는 못 들어가요!!!

by d토삼b 2026.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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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시민공원 잔디 광장.. 정확히 "하야리야 잔디 광장"

★★월요일에는 못 들어갑니다. 꼭 기억하세요!!!★★

- 4월~익년 1월(10개월) / (화요일~일요일) 6일 개방 (월요일) 1일 통제
- 잔디발아기 전면통제 : 2월~ 3월(2개월)
※ 단, 우천시, 일시적인 이용객 집중으로 인한 잔디훼손이 심각할 경우 이용을 제한
※ 다솜마당 잔디광장은 상시개방되며, 잔디상태에 따라 탄력운영 할 수 있음.

잔디밭 내의 금지행위
1. 공을 이용한 운동이나 게임
2. 반려동물 출입
3. 자전거 출입
4. 쓰레기 투기
5. 하이힐 착용
6. 기타, 잔디를 훼손할 우려가 있는 행위

♨ 다솜마당 잔디광장은 상시개방.↓↓↓↓

하야리야 잔디광장만 월요일에 못 들어가고요.. 그 외 다솜마당 잔디밭이나 나무그늘 잔디 밭 많습니다.. 그런 곳은 상시 허용입니다.

Q:그늘막이나 텐트 설치 가능한가?
네 가능합니다. 

텐트 허용규격은 2.5 x 3.0m이하(4인용 이하)이며, 항시 2면이상 개방해야 사용가능.


단,고정시설(로프, 폴대, 팩 등)의 설치는 제한.


매년 4 ~ 10월 공원 전역에서 사용 가능하며, 매주 월요일은 잔디 보호를 위해 통제

남문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시민공원로 73 

이용시간 05:00~24:00

쉬는날: 연중무휴

주차시설: 가능

문의및안내: 051-850-6000

관련 홈페이지: http://citizenpark.or.kr/

입장료:무료


부산시민공원은 단순히 공원을 하나 만든 사업이라기보다, 일제강점기 → 미군기지 → 시민 반환운동 → 부지 반환 → 공원 조성으로 이어진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곳입니다.

1. 1910년대 — 일제가 이 땅을 차지하다

현재 부산시민공원이 들어선 지역은 원래 부산진 일대의 땅이었습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일제가 이 지역을 군사·위락시설 등으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부산시민공원 부지는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이후 이곳에는 경마장이 들어서게 됩니다.

2. 1930년 — 서면경마장 개장

1930년 11월, 지금의 부산시민공원 자리에서 서면경마장이 문을 열었습니다.당시에는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하던 시설이었고, 경마장과 마권 판매장 등이 설치됐습니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이곳의 성격은 점점 군사시설로 바뀌었습니다. 일본군의 훈련장과 군사 관련 시설 등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3. 1950년 — '캠프 하야리아'가 들어서다

1950년 7월 30일, 미군의 부산기지사령부가 이곳에 설치됐고 이후 **캠프 하야리아(Camp Hialeah)**로 알려지게 됩니다.

'하야리아'라는 이름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도시 Hialeah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이자 유엔군의 중요한 후방기지였습니다. 따라서 이곳 역시 단순한 미군 주둔지가 아니라 부산의 군사·물류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4. 1993년 — 반환 요구가 본격적으로 시작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1993년 부산진구의회가 하야리아 부지 반환을 정부에 건의했습니다.

이것이 이후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반환운동을 벌이는 계기가 됐습니다.

5. 1995년 — 시민들의 '우리 땅 되찾기 운동'

1995년 3월 6일, 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하야리아 되찾기 시민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시민들은

"부산 도심 한가운데 있는 거대한 미군기지를 부산 시민에게 돌려달라"

는 취지의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우리 땅 되찾기 대책위원회' 등이 만들어졌고 부산시 역시 미군 및 정부와 반환 협상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부산시가 처음부터 공원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먼저 시민들의 '땅을 돌려달라'는 반환운동이 있었고 그 결과 공원 조성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6. 2004년 — 하야리아 기지 폐쇄 결정

2004년, 한·미 간 협의를 통해 하야리아 기지를 폐쇄하고 반환하는 방향이 결정됐습니다.

당초보다 폐쇄 시기가 앞당겨졌고, 마침내 오랫동안 부산 도심을 차지하고 있던 미군기지를 돌려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무엇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가 등장합니다. 결론은 대규모 시민공원이었습니다.

7. 2005~2006년 — 시민공원 기본계획 추진

2005년부터 시민공원 조성을 위한 기본·실시설계 등이 추진됐습니다.

2006년에는 시민공원 조성 기본구상도 본격적으로 마련됐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2006년 8월 10일

캠프 하야리아가 공식 폐쇄됐습니다. 1950년부터 약 56년 동안 이어졌던 미군 주둔이 끝난 것입니다.

8. 2010년 1월 — 드디어 부산시로 반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입니다. 2010년 1월 13일, 하야리아 부지의 관리권이

주한미군 → 대한민국 국방부 → 부산시 순으로 넘어갔습니다.

즉, 시민들이 오랫동안 요구했던 '부산 시민의 땅'이 실제로 부산시의 관리 아래 들어온 것입니다. 이후 공원 조성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됩니다.

9. 2010년 — 시민들에게 한시적으로 공개

2010년 4월부터 10월까지 부지가 시민들에게 한시적으로 개방됐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일반 시민들이 쉽게 볼 수 없었던 미군기지 내부를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 미군 시설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가 됐습니다. 결국 모든 건물을 밀어버리는 방식이 아니라 역사를 보여주는 일부 시설을 보존하기로 했습니다.

10. 2011년 8월 11일 — 공원 조성 공사 시작

드디어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됩니다.

2011년 8월 11일

부산시민공원 조성사업 기공식이 열렸습니다. 이때부터 우리가 현재 보는 부산시민공원의 모습으로 바꾸는 대규모 공사가 진행됩니다.

총사업비는 약 6,679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 국비 약 3,439억 원
  • 시비 약 3,240억 원

규모였습니다.

11. 2011~2014년 — '군사기지'를 '시민공원'으로

공원 조성에서 특징적인 부분은 기존 역사를 완전히 지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옛 하야리아 부대의

  • 장교관사
  • 하사관 숙소
  • 학교
  • 장교클럽

등 일부 건물을 보존하고 리모델링했습니다. 특히 옛 미군 장교클럽은 현재 부산시민공원 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즉, 일제강점기 → 미군기지 → 시민공원 이라는 역사를 공원 자체에 남겨놓은 것입니다.

12. 시민들도 공원 조성에 참여

부산시민공원의 또 하나의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시민 헌수운동입니다.

시민들이 나무를 기증했고, 이를 공원에 심었습니다. 당시 약 10억 원 상당의 나무와 초화류 6만여 그루가 시민들의 참여로 조성됐습니다.

그래서 부산시민공원은 단순히 부산시가 돈을 들여 만든 공원이라기보다는 시민들이 직접 조성에 참여한 공원이라는 의미도 갖게 됐습니다.

13. 2014년 4월 — 사실상 공원 완성

2014년 초에는 대부분의 공사가 마무리됐습니다. 숲길, 조경, 건축, 전기, 하천, 에코브릿지 등의 공사가 진행됐고 개장을 위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2014년 4월 15일, 헌수자 등을 대상으로 임시 개장이 이루어졌습니다.

14. 2014년 5월 1일 — 부산시민공원 정식 개장

그리고 마침내

2014년 5월 1일

부산시민공원이 정식으로 개장했습니다. 일제가 이 땅을 점유하기 시작한 이후 약 100년 만에 부산 시민에게 돌아온 것입니다.

부산진구 양정동·연지동·범전동 일원에 조성된 대규모 도심 평지공원으로, 전체 사업에는 약 6,679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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