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李仲燮)(1916. 4. 10 ~ 1956. 9. 6) 호:대향(大鄕) 주요작품:《서귀포의 환상》(1951년),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1953년), 《부부》(1953년경), 《황소》(1953~1954년경), 《길 떠나는 가족》(1954년), 《도원》(1954년), 《달과 까마귀》(1954년), 《흰 소》(1954년경) |
이중섭은 1916년 평남 평원(平原)에서 대지주 집안의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스승인 임용련을 만나 서구의 새로운 예술에 일찍 눈을 뜨는 한편 남다른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1935년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 미술학교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일본 문화학원 미술학부(양화과)로 옮겼다. 당시 문화학원은 문부성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상류층 자제들이 많이 다녔다. 김병기, 문학수, 유영국, 안기풍, 이정규 등이 문화학원에 먼저 들어와 있어 이들과 교유했다.~~ 여기까지 백과사전 내용이고요 링크 걸어둘게요..^^ Naver 지식백과
부산 이중섭거리 :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1동 1422-82
한국전쟁발발 후 1·4 후퇴 때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온다.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에서 살며 부두 노동을 하던 그는 1951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해 12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범일동 귀환 동포 마을 변전소 근처에 판잣집을 짓고 생활했다.
당시에 다들 그러하듯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아내 마사코는 1952년 영양 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들어간다. 홀로 남은 이중섭은 낮에는 부두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는 광복동 일원의 밀다원, 금강다방, 그리고 부둣가의 술집들을 전전하며 부산으로 피란 온 예술가들과 친밀한 교분을 나눴다. 비록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끼니를 해결하는 가난한 화가 신세였지만 이곳에서〈범일동 풍경〉이라는 명작을 탄생시킨다.
부산에 있는 이중섭거리에는 그의 고단했던 삶과 치열했던 예술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희망 100계단 끝 이중섭전망대에 이르면 당시 이중섭이 아내 마사코에게 보낸 절절한 편지를 읽을 수 있다.
↑↑'이중섭 전망대' 한가지 팁을 드리자면 웬만하면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세요. 부산 산복도로는 오르막 내리막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더운 여름날 밑에서 올라오면 거의 죽음입니다.ㅋ
↑↑보시는데로 밑에서 올라온다면 ~ㅋㅋ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가는 게 좋다 그 말입니다.ㅋ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 이중섭화가는 40 살다 가셨죠. 1950년대 전쟁 후라 모든 국민들이 그러했듯 다들 힘겹게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생활고에 부인과 아이들은 일본으로 들어가고 홀로 외로움을 견디고 작품 활동을 한 대향 이중섭 선생의 삶이 희망 100계단에 고스란히 남겨져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라고 했지만 밑에서 위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조금이라도 그분의 힘겨운 삶을 느끼고 싶다면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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