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진(御眞 / Royal portrait 왕의 초상화를 일컫는 말.) 어진이라는 단어 외에도, 본래 쉬용(晬容), 진용(眞容), 영정(影幀), 왕상(王像) 등 여러 가지 단어를 사용했지만, 조선 숙종 39년(1713) 숙종 어진을 그릴 당시 어용도사도감도제조(御容圖寫都監都提調)였던 이이명(李頤命)이 건의하여 '어진'이라는 명칭으로 통일했다.

세조 어진, 정말 ‘운 좋은 어진’인 이유 (전쟁 참화 세 번 완벽 비껴간 상세 스토리)
조선 왕들의 **어진(御眞)**은 대부분 임진왜란·병자호란·화재 등으로 소실돼서, 태조 어진(국보) 하나만 제대로 남아 있을 정도예요. 그런데 세조 어진은 정확히 세 번의 대형 참화를 피해 살아남았습니다. 나무위키에서도 “전쟁의 참화를 무려 세 번이나 비껴간 어떻게 보면 운이 정말 좋은 어진”이라고 딱 이렇게 표현할 만큼 유명한 일화죠. 아래에 각 사건을 시간순으로 자세히 풀어드릴게요.
- 세조 어진 원본은 세조 사망 직후(1458년경) 예종이 제작해 **봉선사(남양주)**에 봉안됐어요. (왕실 어진 중 한양 밖에 있어서 초기엔 비교적 안전)
- 1593년 왜군이 봉선사에 쳐들어와 어진을 훼손하려 함 → 절 승려 **삼행(三行)**이 목숨 걸고 애걸복걸하며 막음.
- 그런데 광릉(세조릉) 숲에 불이 붙어 봉선사까지 불길이 번지자, **능참봉 이이첨(李爾瞻)**이 개경 행재소에서 소식을 듣고 달려가 어진을 구출! 위험을 무릅쓰고 행재소로 옮김.
- 결과: 태조 어진과 함께 영변 보현사로 임시 피난 → 전쟁 끝난 뒤 한양 남별전으로 복귀.
- 이 공로로 이이첨은 승승장구했다고 해요. (세조 어진이 사람 목숨까지 걸게 만든 첫 번째 기적)
- 광해군 때 남별전에 봉안된 상태.
- 청나라 침공 징조를 느낀 광해군이 미리 어진들을 강화도 영숭전·봉선전으로 피난시킴.
- 강화도 함락 → 어진 대부분 분실 위기! 태조 어진은 심하게 찢어져 종묘 북쪽에 묻혔지만…
- 세조 어진은 약간 찢어진 상태로 극적으로 발견 (성밖에서 찾음).
- 인조가 “내 덕이 없어 잃을 뻔했다”며 직접 수리 명령 → 숭은전에서 보관 후 다시 남별전으로 복귀.
- 이후 숙종 때 영희전, 영조 때(1735년) 노후돼 새로 이모(복제)까지 됨. 영조가 새벽 5시부터 직접 눈동자·뺨 색깔까지 지시하며 세밀하게 고쳤다는 기록도 있어요.
- 일제강점기(1935년) **김은호(마지막 어진화사)**가 창덕궁 신선원전에 있던 세조 어진을 모사할 때 **초본(草本, 밑그림)**을 따로 그려둠.
- 한국전쟁 때 모든 왕실 어진(총 48점)이 부산으로 피난 → 부산 용두산 창고에 보관 중 1954년 대화재 발생.
- 세조 어진 두 점 모두 완전 소실 (다른 왕 어진들도 대부분 불탐).
- 그런데! 김은호가 개인적으로 초본을 보관하고 있었음 (원래 초본은 소각해야 하는데, 몰래 간직한 덕분).
- 이 초본이 1969년 경향신문에 실렸다가 김은호 사망 후 행방불명 → 2016년 서울옥션 경매에 등장! 국립고궁박물관이 7,200만원에 낙찰해 현재 소장 중입니다.

- 다른 왕 어진들은 한양 중심에 모여 있다가 한 번에 불타거나 약탈당했는데, 세조 어진은 봉선사 → 남별전 → 강화도 등으로 미리 피난 경로가 다양했습니다.
- 사람들(이이첨, 승려, 김은호)의 헌신 + 우연(초본 개인 보관)이 더해진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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