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람과사람/공직자(公職者)

세종대왕님은 왜 고려시대 어진을 다 태웠나요? 충격이다.

by d토삼b 2026. 3. 19.
728x90
반응형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어진에 대해 알아보는 바 너무 충격적인 사실을 봐버렸다.ㅠㅜ

고려시대까지 정식으로 그려진 그림 형태의 어진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신라의 어진에 관한 기록과 당서에 고구려 왕 초상화를 제작했다는 기록과 같이 임금의 초상화를 그려 모시는 것은 고대에도 존재했으나, 고대의 어진은 하도 오래됐다 보니 원본이 남아있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겠지만, 고려시대의 어진은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일일이 모아서 불태우거나 땅에 묻었다고 한다.ㅠㅜ

세종 표준영정.1973년 김기창 작. 상상 어진으로 실제 어진은 병자호란 당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백인 김기창이 자신의 얼굴과 흡사하게 그렸다는 논란이 있다.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 할아버지가 왜?? 너무 맘 아프지만 하나하나 풀어봅시다..ㅠㅜ

세종 재위 기간(1418~1450)에 조선 조정이 조직적으로 고려 역대 왕·왕비·공신들의 어진(초상화)과 동상·조각상을 불태우거나 땅에 묻는 작업을 대대적으로 벌였기 때문에, 오늘날 고려 왕들의 어진이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은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이 사건을 ‘분영갱상(焚影坑像)’ 또는 **‘분진갱영(焚眞坑影)’**이라고 부르는데, 세종실록에 명확히 기록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1. 세종 시대 주요 ‘어진 제거’ 기록 (세종실록 직접 인용 기반)
  • 1426년 (세종 8년) 5월 19일
    도화원(조선 왕실 미술 담당 기관)에 보관 중이던 고려 역대 군왕·왕비 초상화를 모두 불태움. 태조 왕건의 비 신성왕후 반신상도 함께 소각.
    이게 가장 대표적인 “불태우기” 사례.
  • 1428년 (세종 10년)
    전국 각지(충청도 천안·문의현, 전라도 나주·광주 등)에 흩어져 있던 고려 태조·혜종 등의 어진·조각상·공신 영정을 모아 각각의 능(릉) 곁에 땅에 묻음.
    → 단순 불태우기뿐 아니라 “갱상(坑像, 땅에 묻기)”도 병행.
  • 1433년 (세종 15년) 6월
    경기 연천 마전현(미산면)에 봉안된 고려 역대 임금 18명의 어진을 발견하고 “정갈한 땅에 묻으라”고 명함.
  • 1437년 (세종 19년)
    경기 안성 청룡사에 있던 공양왕 어진고양현 암자로 옮기라는 명령 (이건 완전 제거는 아니지만, 결국 소실로 이어짐).
이 외에도 세종 재위 내내 고려 시대 유물(특히 불교·왕조 상징물)을 지속적으로 색출·파괴했어요.
2. 왜 세종은 이렇게 했을까? (주요 이유)

조선은 유교 국가로 개국하면서 고려(불교 중심 왕조)의 잔재를 철저히 지우려 했어요. 어진은 단순 그림이 아니라 왕조의 영혼·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고려 왕들의 어진이 살아 있으면 민심이 동요하거나 복고(復古) 세력이 생길 수 있다고 봤습니다.
  • 정통성 확보 → 조선은 “고려를 계승한 정통 왕조”라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고려를 “이단(불교)·퇴폐 왕조”로 폄하. 어진을 없애는 건 고려 왕조의 상징을 완전히 지우는 정치적 행위.
  •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의 일환 → 고려는 불교가 국교라 왕·왕비 어진을 사찰 진전에 모시고 제사를 지냈음. 유교 국가 조선 입장에서는 “우상 숭배”로 보였음.
  • 왕씨 학살 등 고려 잔재 청산 → 왕씨 왕족 학살, 공민왕·창왕·공양왕 후손 처벌 등과 같은 맥락. 어진 제거도 “고려 색채 지우기”의 연장선.
태종 때부터 시작된 분위기(태종도 자신의 어진 일부 불태움)를 세종이 본격화한 거예요.
3. 그래도 일부 살아남은 경우?
  • 세종 이후에도 목종·문종·선종·공양왕·태조 왕건 어진이 중종·선조 때까지 사찰이나 지방에 남아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 특히 태조 왕건 어진은 개성 현릉·개태사·용천사 등에 봉안돼 일제강점기까지 사진으로 남았지만, 한국전쟁 때 사찰 화재로 최종 소실.
  • 공민왕 어진도 비슷하게 전쟁으로 사라짐.
결국 세종의 조직적 제거 + 후대 전쟁·화재로 고려 어진은 그림 형태로 단 한 점도 현존하지 않아요.
 
4. 요약: “다 태웠다”는 표현은 맞지만…
  • 세종 혼자가 아니라 조선 초기 왕조 전체의 정책.
  • 불태우기(焚) + 땅에 묻기(坑) 병행 → 완전 파괴 의도.
  • 결과적으로 고려 왕들의 얼굴은 오늘날 상상으로만 재현 (태조 왕건상은 석상·탱화 등으로 일부 유추 가능하지만, 어진 원본은 無).
세종의 위대한 업적에 비하면 “아쉬운 한 점”으로 평가받는 부분입니다. 중국처럼 왕조 교체 시에도 전 왕조 어진을 보존한 사례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왕과 사는 남자' 천만 그 이상의 눈물의 역사.(이제 스포 넣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2026년 장항준 감독, 유해진·박지훈 주연 사극)의 최신 누적 관객수는 약 1,360만 명 수준입니다. (2026년 3월 16일 기준으로 13,601,731명 ~ 13,601,881명 정도로 집계된 자료가 있으

9bong.tistory.com

 

단종의 숙부 세조의 실록 조작한 것 좀 보소.

단종의 역사적 배경 (조선 제6대 왕, 이홍위)단종(端宗, 1441~1457)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왕 중 하나로, 어린 나이 즉위 → 숙부의 쿠데타 → 폐위 → 유배 → 조기 사망이라는 운명을 겪었습

9bong.tistory.com

 

세조 어진 운빨 쥑이네~(불탔다가 부활함) 된장이다.(왕사남)

▷ 어진(御眞 / Royal portrait 왕의 초상화를 일컫는 말.) 어진이라는 단어 외에도, 본래 쉬용(晬容), 진용(眞容), 영정(影幀), 왕상(王像) 등 여러 가지 단어를 사용했지만, 조선 숙종 39년(1713) 숙종 어

9bong.tistory.com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