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종교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이 글을 작성하는가 물어신다면 '구~냥 존경해서요'라고 답하겠습니다.블로그 포스트 하나에 뭐~거창한 뜻이 있겠습니까??^^;; 다문 정의자로서 그 믿음과 그 용기에 감동해서입니다.
김범우[金範禹 1751년4월27일(음)-1787년 7월16일(음) 37세]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
▒ 천주교 신자라면 토마스님을 잘 알겠지만 저와 같이 기독교와 무관한 사람이라면 당연시 누군지 모르겠죠.간략히 설명드리자면입니다.순교자는 맞는데 최초의 순교자가 아니고 희생자라는 겁니다.물론 고문을 받기는 했지만 정부에 의한 교수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참고로
조선 최초의 순교자는 바오로 윤지충(尹持忠, 1759~1791)입니다.학교 다닐때 천주교 박해사건 외우고 시험도 쳤던걸로 기억나는데..당시에 김범우라고 배웠을겁니다..(실은 기억은 안나는데 배운것 같아요--;;)
1751년(영조 27년)4월 27일(음) 서울 명례방(지금의 명동성당자리)에서 태어났고.1787년 9월14일(음 7월16일.37세) 유배지에서 선종하셨다고 합니다. 37세의 나이에 가시다니.ㅠㅠ 필자도 지금 딱 37입니다..세월은 가는데 나이만 먹고..ㅋ~
▧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역사적 사실을 조금 더 얘기하자면요 토마스 김범우님은 이벽(李蘗)의 권고로 천주교에 입교, 이승훈(李承薰)으로부터 세례를 받어셨습니다.1785년 이벽 ·이승훈 ·정약전(丁若銓) ·정약용(丁若鏞) ·정약종(丁若鍾) 등 남인(南人) 학자 등과 김범우님의 집에서 예배를 보다 발각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양반출신이라 방면되었어나 토마스 김범우님과 최인길은 중인출신이라 추포,고문을 받았습니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돈 없고 빽없어면 서러운건 매한가지군요. 그 후 밀양 단장으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지에서도 토마스님은 계속해서 종교활동을 하다가 고문을 받은 상처의 악화로 1787년 9월 14일 (음 7월16일 향년 37세) 선종하였습니다.
필자가 토마스 김범우님을 알게 된 계기는 양산에서 밀양쪽으로 가다가 우연히 보게된 '김범우의묘'라고 새겨진 돌바위..누굴까? 뭔가 유명한 사람이겠지라는 궁금증으로 잠시 차를 돌렸습니다. 그냥 길따라 산으로 올라갔죠..네비게이션에도 '김범우의묘'라고 나오더군요. 그럼 지금부터 김범우님 묘로 가보겠습니다.
방문일자 : 2009년 3월30일과 5월18일 두번에 걸쳐서 방문.
소 재 지 :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위치파일 : 구글어스에서 보시면 됩니다.컴에 어스가 있어면 구냥 클릭하시면 되고요..어스에서 보실때 클릭하면 상세정보가 나옵니다.
구글어스 다운로드
여기까지 오셨다면 다온겁니다. ↑ 사진에서 보듯이 그대로 길 따라 가시면 됩니다.
↓ 아래 동영상을 참조하세요.주차장에서 묘까지 올라가는 영상입니다.
↑ 3월 30일 갈 때에는 폰카로 찍어서 화질이 별로네요 --;; 영문으로 되어있습니다.아무래도 외국인에 대한 배려인듯~
↑ 여기만 넘어면 묘가 나옵니다.
↑ 뒤를 돌아본 풍경입니다. 깨끗한 자연~마음까지 맑아집니다.
↑ 왜 안경이 있을까요? 혹 수녀님이 두고 가셨낭? 모르고 갔을 수도 있지만 안경 모양새로 보면 이불로 두고 간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 '맏물봉헌' 꼭 저 글귀를 새겼어야 하는지???무교인 제가 보기에는 조금~~글터군요..--;;
↑ 내려가면서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봤습니다.원래 순서는 밑에서 올라오는겁니다.
▒ 마치는 즈음에서~
무교인 저한테 우연히 알게된 토마스 김범우님은 짧게나마 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뜬구름 잡듯이 흐느적 거리며 세월만 낚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살아 있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며 애착을 가져야하는지 잠시나마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갔던 3월 30일 토마스 김범우님의 묘를 봤을때 경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산에,,아무도 없는 묘에,,혼자 우두커니 서 있었죠. 이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의 물음을 안고 돌아와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조선의 증거자(證據者=<카톨릭>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고 굳건한 신앙 자세를 지킨 사람)라는 겁니다. 증거자라는 용어 자체는 종교인들이 쓰는 말인데 누굴 믿고 뭘 믿고를 얘기하는게 아니라 당대 조선시대에 그런 생각을 가진 자체가 대단하다는겁니다.유학인 조선에서 부모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앙심을 가진다는거..현시대를 살아가는 필자는 지금도 이런 생각을 못한다는거죠. 발상의 전환,생각의 발전, 늘 같은 틀안에서 이 곳이 젤 넓은 곳인양 착각하며 살아가는 필자에게 토마스 김범우님은 새삼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금의 현시국에 극히 일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좋은 소리 못 듣고 있는건 사실입니다. 필자가 토마스 김범우님의 포스트를 작성한건 윗글에도 몇번 언급했지만 종교를 떠나서 인간 김범우님을 소개하고 싶어서 작성한겁니다.아무쪼록 편향된 시각으로 보지 마시고 그냥 있는 그대로..그냥 김범우님의 삶을 봐주셨어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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